<그림자를 판 사나이> 서평입니다
곰곰아, 엄마가 옛날 이야기 해 줄게.
" 옛날에 슐레밀이라는 독일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 집에 놀러 갔다가 사람 모습을 한 악마를 만난 거야. 처음에는 악마인 줄 몰랐지. 악마에게는 요술 자루가 있었는데, 슐레밀이 원하는 돈, 보석, 값진 물건 같은 걸 악마가 다 꺼내주는 거야. 슐레밀은 정말 그 요술 자루를 갖고 싶었고, 악마는 그림자를 팔면 요술 자루를 준다고 해서 자신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주고 거래를 했지. 슐레밀은 요술 자루를 갖게 되어 정말 기뻤어 그래서 멋진 옷도 사고 보석도 사고 돈도 많이 갖고 다녔지.
그런데 한 사람이 "왜 당신은 그림자가 없지?"라고 지적하는 순간, 슐레밀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슐레밀 옆에 가지도 않고, 그 이후로 외톨이가 되었단다. 사랑하는 사람이과도 헤어져야 했고,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어. 아무리 돈이 많고 멋진 집을 갖고 있어도 사람들은 슐레밀을 친구나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슐레밀은 그때서야 그림자를 판 일을 후회하고 다시 악마를 찾아가서 그림자를 찾아오려고 했지. 그런데 결국 다시 찾을 수 없었어. 악마는 오히려 영혼까지 팔라면서 다시 유혹을 했지.
결국 슐레밀은 다시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요술 자루를 버리고, 혼자 떠나기로 했어. 그리고 시장에서 우연히 긴 장화를 사서 신었는데, 그 장화가 한 걸음에 비행기가 가는 만큼 멀리 갈 수 있는 마법의 장화였던 거야. 그래서 세계 곳곳 깊은 숲 속, 높은 산, 동물들이 사는 밀림 같은 사람이 없는 자연을 홀로 다니면서 거기 사는 동물, 식물, 날씨 변화 같은 것을 기록하면서 살았대. "
곰곰이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귀기울여 들었어요.
"곰곰아, 이 사람은 그림자가 없어서 사람들이 싫어했대. 유림이는 그림자가 없으면 어떨거 같아?"
"응 나도 싫을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도 무섭고 싫어. "
평소에 아이는 머리카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기 머리카락도 자르는 걸 싫어하고 머리카락이 긴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듯한? 아무튼 아이가 그림자를 머리카락과 같은 외적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저도 그림자가 영혼과 구별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외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신체의 결핍, 장애 같은 거라든지, 그리고 지금 이 시기와 관련해서 전염병 같은 것이 그림자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승준씨도 생각났어요. 한국 국적을 포기한 후 입국금지 당한, 그렇다면 그림자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 같은 것인데, 어디에 소속되느냐를 원하느냐에 따라 그 자격은 조금씩 다를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림자가 한국이라는 국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입사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건강하다는 증명서 일 수도 있고.
저는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대학 시험에 불합격 후 재수하는 학생들이 어쩌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학 합격증을(그림자) 받은 대학생들과 고등학교를 이미 졸업 후 어디에도 소속되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재수생의 상황.. 재수할 때 졸업생들은 절대 모교 방문 안 하거든요, 대학 합격을 성공한 후 모교로 놀러와요. 그때야 비로소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짠하고 미안해요.
슐레밀의 곁에 유일하게 있어준 벤델이 이러 저러한 결핍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매우 적다는 것 또한 정확하게 그린 것 같고. 결국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런 편견은 극복되지 않기에,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슐레밀...
저는 헬렌컬러의 앤 설리번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부모도 보기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헬렌컬러에게 용기와 배움을 준 사람. 그 덕분에 사회와 단절, 격리되었던 헬렌컬러가 다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이구나 싶어요.
지금 참 민감한 상황이지만, 신천지 교인들, 성소수자 등도슐레밀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미실천의 잘못이 있지만, 지금 완전히 마녀사냥 하는 것 같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편견과 소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언론 선동과 댓글로 인해 관련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어쩔런지..
작가는 인간이 그림자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이 결핍이 받아들여지는 어떤 장소나 집단의 인정에 의해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의 떠돌이, 여행을 선택한 것이 아쉬워요. 아마 작가는 편견이 극복되는 유토피아 같은 사회는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슬프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길을 찾는데 사회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고, 아주 우연히 '장화'를 사게 되어서 그런 여행자라도 될 수 있었다는 점이, 여전히 아쉬워요. 이런 복불복이 아닌,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격,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서평입니다
곰곰아, 엄마가 옛날 이야기 해 줄게.
" 옛날에 슐레밀이라는 독일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 집에 놀러 갔다가 사람 모습을 한 악마를 만난 거야. 처음에는 악마인 줄 몰랐지. 악마에게는 요술 자루가 있었는데, 슐레밀이 원하는 돈, 보석, 값진 물건 같은 걸 악마가 다 꺼내주는 거야. 슐레밀은 정말 그 요술 자루를 갖고 싶었고, 악마는 그림자를 팔면 요술 자루를 준다고 해서 자신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주고 거래를 했지. 슐레밀은 요술 자루를 갖게 되어 정말 기뻤어 그래서 멋진 옷도 사고 보석도 사고 돈도 많이 갖고 다녔지.
그런데 한 사람이 "왜 당신은 그림자가 없지?"라고 지적하는 순간, 슐레밀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슐레밀 옆에 가지도 않고, 그 이후로 외톨이가 되었단다. 사랑하는 사람이과도 헤어져야 했고,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어. 아무리 돈이 많고 멋진 집을 갖고 있어도 사람들은 슐레밀을 친구나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슐레밀은 그때서야 그림자를 판 일을 후회하고 다시 악마를 찾아가서 그림자를 찾아오려고 했지. 그런데 결국 다시 찾을 수 없었어. 악마는 오히려 영혼까지 팔라면서 다시 유혹을 했지.
결국 슐레밀은 다시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요술 자루를 버리고, 혼자 떠나기로 했어. 그리고 시장에서 우연히 긴 장화를 사서 신었는데, 그 장화가 한 걸음에 비행기가 가는 만큼 멀리 갈 수 있는 마법의 장화였던 거야. 그래서 세계 곳곳 깊은 숲 속, 높은 산, 동물들이 사는 밀림 같은 사람이 없는 자연을 홀로 다니면서 거기 사는 동물, 식물, 날씨 변화 같은 것을 기록하면서 살았대. "
곰곰이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귀기울여 들었어요.
"곰곰아, 이 사람은 그림자가 없어서 사람들이 싫어했대. 유림이는 그림자가 없으면 어떨거 같아?"
"응 나도 싫을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도 무섭고 싫어. "
평소에 아이는 머리카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기 머리카락도 자르는 걸 싫어하고 머리카락이 긴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듯한? 아무튼 아이가 그림자를 머리카락과 같은 외적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저도 그림자가 영혼과 구별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외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신체의 결핍, 장애 같은 거라든지, 그리고 지금 이 시기와 관련해서 전염병 같은 것이 그림자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승준씨도 생각났어요. 한국 국적을 포기한 후 입국금지 당한, 그렇다면 그림자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 같은 것인데, 어디에 소속되느냐를 원하느냐에 따라 그 자격은 조금씩 다를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림자가 한국이라는 국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입사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건강하다는 증명서 일 수도 있고.
저는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대학 시험에 불합격 후 재수하는 학생들이 어쩌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학 합격증을(그림자) 받은 대학생들과 고등학교를 이미 졸업 후 어디에도 소속되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재수생의 상황.. 재수할 때 졸업생들은 절대 모교 방문 안 하거든요, 대학 합격을 성공한 후 모교로 놀러와요. 그때야 비로소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짠하고 미안해요.
슐레밀의 곁에 유일하게 있어준 벤델이 이러 저러한 결핍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매우 적다는 것 또한 정확하게 그린 것 같고. 결국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런 편견은 극복되지 않기에,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슐레밀...
저는 헬렌컬러의 앤 설리번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부모도 보기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헬렌컬러에게 용기와 배움을 준 사람. 그 덕분에 사회와 단절, 격리되었던 헬렌컬러가 다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이구나 싶어요.
지금 참 민감한 상황이지만, 신천지 교인들, 성소수자 등도슐레밀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미실천의 잘못이 있지만, 지금 완전히 마녀사냥 하는 것 같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편견과 소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언론 선동과 댓글로 인해 관련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어쩔런지..
작가는 인간이 그림자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이 결핍이 받아들여지는 어떤 장소나 집단의 인정에 의해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의 떠돌이, 여행을 선택한 것이 아쉬워요. 아마 작가는 편견이 극복되는 유토피아 같은 사회는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슬프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길을 찾는데 사회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고, 아주 우연히 '장화'를 사게 되어서 그런 여행자라도 될 수 있었다는 점이, 여전히 아쉬워요. 이런 복불복이 아닌,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격,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